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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설하고 있다. 유타주 연방 토지 양도와 관련된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항료를 걷겠다고 공언하면서 당초 미국이 목표로 삼았던 ‘전쟁 이전으로의 회복’은 사실상 무너지게 됐다. 수십 년간 미국과 국제사회가 천명해온 ‘항행의 자유’ 원칙도 흔들리게 됐다. 걸프국 등 미국의 우방을 포함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타격을 입은 전 세계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호르무즈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안전 보장 명목으로 제시한 ‘운송 화물 20% 통항료’는 이란이 주장해온 ‘서비스료’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이란은 종전 양해각서(MOU) 합의에 따라 60일 이후 안전한 항행 보장을 명목으로 한 서비스료 부과 방안을 검토해왔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항료 선언이 그간 미국이 확립·주장해온 ‘자유항행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달 25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에서 ‘해협에 대한 통행료·수수료 또는 통제권을 주장하는 행위는 모두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에 동참했다. J D 밴스 부통령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현행 국제법에 따라 “어떤 나라도 국제 수로에서 통행료나 요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를 뒤집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항행의 자유를 지지해 온 수백 년간의 미국 정책을 뒤집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자유항행의 원칙을 저버리면서, 역설적으로 이란의 주장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통항 안전을 위해 해협을 관리하는 비용을 받겠다’는 명분이 같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간 이란이 주장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부인하며 “이란이 해협을 운영(run)하게 할 수 없다”고 밝혀왔는데,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운영(run)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발언 주체만 바뀌었을 뿐, 양측 모두 안보를 이유로 해협 통제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조롱 섞인 이란 측 메시지가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며 “(해협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는 자는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통항료 선언으로 ‘자유통항 대 유료통항’의 구도는 ‘통항료 대 서비스료’ 구도로 전락하게 됐다. 국제사회의 합의와 이란의 요구가 대치하던 상황에서 ‘누구에게 얼마를 내는 게 더 합리적인가’를 둘러싼 숫자 싸움만 남는 것이다. ‘트럼프 안은 3000만달러, 이란 안은 200만달러’ 식 외신 보도가 대표적이다. 아라그치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20%는 과하다. 우린 공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정세나 국제 경제에 대한 고려 없이 ‘미국이 들인 비용은 돌려받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적 외교가 반복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킨 전쟁의 비용 청구서를 동맹국에 떠넘기는 양상도 되풀이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돕는 국가들을 우리가 보호하는 것”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UAE)·카타르·바레인·쿠웨이트를 언급했다. 한국과 일본 등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원유를 공급받는 국가들도 통항료 징수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걸프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미국과 함께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는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의 이탈을 목도하게 됐다. ‘3000억달러 재건기금’을 두고 벌어졌던 비슷한 논란과 갈등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료에서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알렉스 바탄카 중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알자지라에 “(트럼프의 제안은) 중동의 미국 우방국들을 불쾌하게 할 것”이라며 “걸프국은 미국에 그런 합의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