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불안이 세계로 번지는 가운데 중국의 ‘국민 고추소스’ 라오간마가 AI 도입 해고설에 휘말렸다. 회사는 대규모 해고를 부인했지만 소비자들은 불매를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구이저우성에 본사를 둔 라오간마가 AI 품질검사 시스템을 도입한 뒤 고추 선별 인력을 600여 명에서 48명으로 줄였다는 주장이 지난 26일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졌다. 출발점은 회사가 직접 소개한 공장 자동화 성과였다. 리신 라오간마 최고품질책임자는 이달 초 열린 ‘2026년 구이저우성 품질발전대회’에서 카메라로 불량 고추를 자동으로 골라내는 AI 시각검사 시스템을 지난해 전면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를 처음 전한 구이저우일보 기사에는 인력 감축 규모가 없었지만 이후 일부 매체가 확인되지 않은 수치를 덧붙이면서 대규모 해고설로 번졌다.
라오간마는 중국 매체 봉황망을 통해 AI 기술을 품질검사에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 해고는 사실이 아니며 애초에 그렇게 많은 직원을 고용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 해명은 감축 규모만 부인했을 뿐 선별 인력이 어떻게 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상하이데일리는 회사의 부인에도 고용 상태가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전했고, 봉황망은 일부가 창고·포장 부서로 옮겼고 소수 숙련공은 최종 검수를 맡았으며 상당수는 계약이 끝난 계절노동자였다는 제삼자 주장을 소개했다. SCMP는 추가 입장을 듣기 위해 본사에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불매 예고에 매출 줄었지만…브랜드 이미지가 키운 반발
일부 소비자는 사람을 해고하고 AI로 대체하는 기업의 제품은 사지 않겠다며 불매를 예고했다. 중국 포털 시나에 따르면 한 데이터 플랫폼 집계에서 라오간마의 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하루 매출은 5000~1만위안(약 100만~201만원)에서 지난 22일 이후 1000~5000위안(약 20만~100만원)으로 줄었다. 반발이 커진 데는 브랜드 이미지가 작용했다. 라오간마는 30년 넘게 중국 가정의 식탁에 오른 고추소스로 유리병에 창업자 타오화비의 근엄한 얼굴이 새겨져 있다. 타오화비 역시 해고된 노동자 출신으로 량피(쌀국수) 노점을 하다 고추소스 사업을 일궜고, 이런 이력이 서민 노동자층에 대한 브랜드의 호소력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상하이데일리의 설명이다.
중국 당국도 속도 조절…”AI 도입, 대중 불안 자극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AI 도입을 독려해 왔다. 지난해 내놓은 ‘AI 플러스’ 행동계획은 2027년까지 차세대 지능형 단말·AI 에이전트 보급률을 70% 이상, 2030년까지 9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AI 도입에 따른 해고를 둘러싼 노동 분쟁이 잇따르자 국무원은 지난주 노동집약적 산업의 기업들에 AI 도입 속도와 규모를 신중하게 정하라고 권고했다. 대규모 AI 시스템을 들이기 전 직원에게 미리 알리고 재교육과 사내 직무 전환을 지원하라는 내용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존 손턴 중국센터의 카일 찬 연구원은 라오간마가 중국의 상징적 브랜드이지만 사람들이 AI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할 기업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논란이 더 상징적이라고 짚었다.
그는 정부의 공식 메시지가 AI의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기업의 AI 도입이 대중의 커지는 불안을 자극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가 사라진 직원에게 대체 일자리를 주거나 새 시스템 도입 뒤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하게 하는 보호 장치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한 AI 업계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 도입을 서두르는 기업과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계속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라오간마 소동은 소문에서 비롯됐지만 AI와 일자리를 둘러싼 불안이 얼마나 큰지 보여 준다. 미국 구조조정 전문기관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올해 1~5월 AI를 이유로 든 미국 기업의 감원은 8만7714명으로 2024~2025년 합계(6만7578명)를 5개월 만에 넘어섰다. 5월 한 달에만 3만8579명으로 전체 감원의 40%를 차지해 월간 최고를 기록했고, 7월 보고서에서도 AI는 5개월 연속 감원 사유 1위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전 세계 직원의 27%인 약 6만명에게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회사는 변화하는 인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AI 데이터센터에 막대한 자금을 쏟는 가운데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감원의 실제 이유를 AI라고 포장하는 이른바 ‘AI 워싱’ 경고도 있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1월 보고서를 통 AI 감원 워싱이 올해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서는 AI 때문에 대부분 사람의 경제적 기회가 줄 것이라는 응답이 성인의 61%(CBS·유고브)였고, 30세 미만의 73%는 향후 20년간 일자리가 줄 것으로 봤다(퓨리서치센터). 전문가들은 AI 도입 속도가 노동자 보호와 재교육 속도를 앞지르지 않도록 사전 통지, 직무 전환, 일정 기간 고용 유지 같은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