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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6월 03일
“제재 해제하고 전쟁 보상” 핵 얘기 쏙 빠진 이란 협상안
2026년 5월 10일 제작된 이 화면 캡처는 미국 중부사령부(US Central Command)가 2026년 5월 8일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공개한 영상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란 국적 유조선 ‘M/T 세브다(Sevda)’에 대한 공격 장면.
이란이 미국에 전달한 종전 협상 답변서에 전쟁 피해 보상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자국 주권 인정 요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다. 11일 이란 국영방송 IRIB에 따르면 답변서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보상 요구가 포함됐다. 또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자국의 주권을 인정할 것을 미국 측에 요구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가까운 타스님 통신도 협상 내용을 일부 보도했다. 타스님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란 측 문서가 대이란 제재 해제를 핵심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은 즉각적인 전쟁 종료와 함께 향후 미국이나 동맹국의 추가 공격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장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도 담았다. 답변서에는 모든 전선에서의 군사 충돌 종식을 요구하는 내용과 함께, 미국 재무부가 이란산 원유 판매와 관련해 부과한 제재를 30일 이내 철회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이란은 최근 휴전 및 종전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핵 프로그램과 제재, 호르무즈 해협 문제 등을 둘러싼 입장 차가 여전히 큰 상황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방금 이란 측 ‘대표들’의 답변서를 읽었다”며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란은 이날 미국 측 제안에 대한 공식 답변서를 전달했다. 미국은 당초 지난 8일 밤 답변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전달 시점은 약 이틀가량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은 왜 트럼프의 모욕과 망신주기를 견뎌내고 있을까
최근 트럼프는 독일 주둔 미군을 5000명 이상 줄이겠다고 발표해서 유럽을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지난달 말 미국을 겨냥해 “이란 지도부에 의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직격했고, 격노한 트럼프가 메르츠에게 “망가진 국가를 고치는 데나 집중하라”며 비난을 쏟아낸 뒤 나온 조치가 주독 미군 감축입니다.트럼프의 ‘실력 행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EU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을 15%에서 25%로 끌어올리겠다며 경제 보복 카드도 꺼냈습니다. 트럼프의 강공 앞에서 메르츠는 기세가 확 꺾였습니다. 그는 3일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다”며 사실상 납작 엎드렸습니다.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이처럼 트럼프가 우방과 동맹에게 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모욕적인 말들과 보복 조치가 꽤 있지만 유럽에서 마땅히 반격을 가하지도 못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끊지도 못하는 이유를 이번 영상에서 자세히 이야기합니다. 트럼프는 2025년 다보스 포럼에서 “유럽은 미국이 없으면 지도에서 사라질 곳”이라고 했는데요. 당시 유럽 정상들의 면전에서 했던 핵심 워딩을 그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 “솔직해지자. 미국이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유럽 정상들 중 상당수는 자기 나라 국기를 내걸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럽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지킬 능력도, 의지도 없는 박물관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말은 거칠고 모욕적이지만 틀리다고 반박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럽이 이런 모욕을 견디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먼저 안보상의 이유입니다. 미국의 AI 기반 군사 정보와 핵우산이 없다면 유럽은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NATO 회원국은 32개국이지만 전체 방위비의 62~63%를 미국이 책임지는 일방적인 구조로 돼 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32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지만 전체 국방비의 3분의2 가까이를 미국이 지출한다.
다음으로는 경제적인 이유인데요. 중국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은 미국과 교역해서 흑자를 얻어 중국과의 거래에서 발생한 적자를 일부 벌충하는 대외 무역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관계가 나빠져 미국 시장을 잃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안 그래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유럽 경제가 결정타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럽연합(EU)은 미국과의 교역에서 생기는 얻는 이익을 중국과의 교역에서 모두 잃어버리는 무역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안보도 흔들리고 경제도 어려워질 수 있으니 유럽은 트럼프와 미국의 모욕을 견디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걸 뒤집어 이야기하면 유럽이 그동안 안보와 경제를 모두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이번 ‘손진석의 머니워치’에서는 미국과 유럽 간의 이런 역학 구도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시사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설명합니다. 국가적 위상이란 한눈 팔지 말고 계속 높게 가져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동맹이고 우방이라는 말로 치장한다고 해도 힘을 갖추고 능력이 있어야 상대방도 우리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美가 시작한 전쟁…“청구서는 세계가 받았다”-NYT
미국이 이란전쟁을 일으켰지만, 정작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이 짊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각) 미국이 시작한 이란 전쟁의 경제적 충격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은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 여파로 인도와 방글라데시 섬유공장들은 가동을 멈추고, 아일랜드·폴란드·독일에서는 항공기 운항이 차질을 빚고 있다. 베트남·태국 등에서는 ‘에너지 배급제’가 시행되고 있는 등 세계 경제가 8주 만에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전쟁의 직접 당사자인 미국도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부담을 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국 내 원유·가스 생산 능력과 상대적으로 견조한 내수 덕분에 충격은 신흥국보다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아시아와 유럽 각국에서 경기침체 경고음이 커지고 있지만, 미국은 주요 선진국보다 양호한 성장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매체는 전했다. 성장세는 안정적이고 실업률도 낮은 상황이다. 캐나다왕립은행은 지난주 “미국 경제에 반대로 베팅하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쟁 충격은 부유한 산유국에도 번지고 있다. NYT는 국부펀드 규모가 2조 달러를 넘는 아랍에미리트(UAE)가 미사일 공격으로 손상된 가스전과 호르무즈 해협 운송 중단 여파에 따라 미국에 금융 지원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에너지와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가난한 나라들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연료와 비료 가격 급등은 하반기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어 저소득국들의 경우 인상된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정부도 보조금이나 재정 지원을 제공할 여력이 부족하다. 미국도 타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 이후 휘발유 가격 상승은 저소득층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고, 월가의 은행들은 성장률 전망을 낮추고 인플레이션 전망을 높이고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도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가스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어 다른 나라보다 충격 흡수력이 크다고 매체는 보도했다. 또 미국 경제는 서비스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 집약 제조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에너지 가격 급등이 제조업 중심 국가보다는 상대적으로 직접 충격은 작다. 다만, NYT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 역시 피해를 피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연료 가격 상승은 운송비와 소비재 가격을 끌어올리고, 호르무즈 해협 물류가 전쟁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면 고유가가 장기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란 전쟁은 미국의 군사적 선택이지만, 경제적 비용은 세계 각국, 특히 취약한 국가와 저소득층에 더 무겁게 전가되고 있다고 끝을 맺었다.
'3분' 만에 끝나는 전쟁…한국은 '정지 버튼'을 가졌는가
2026년 봄의 미-이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4월 8일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합의했지만,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미 해군의 이란 국적 선박 나포가 이어졌고, 이란은 즉각 휴전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전면전과 휴전, 봉쇄와 협상이 뒤엉킨 채, 이 전쟁은 더 위험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전쟁의 종료가 아니라,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무너진 새로운 유형의 분쟁이다. 그런데 이 전쟁이 남긴 가장 섬뜩한 장면은 승패가 아니다. 전쟁을 움직이는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오늘의 전장에서 인공지능은 위성 영상과 드론 피드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표적을 식별하고, 알고리즘은 기상·지형·병참 조건을 결합해 타격 우선순위를 계산한다. 인간 지휘관은 기계가 제시한 결론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역할로 빠르게 밀려나고 있다. 아직 손가락은 인간의 것이지만, 판단의 시간과 공간은 이미 기계가 장악하고 있다. 미-이란 전쟁은 그 사실이 처음으로 대규모로 목격된 경고음이었다. 그러나 중동은 예고편일 뿐이다. 진짜 시험대는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그리고 그 충격파를 가장 먼저 정면으로 맞을 한반도다.
독수리와 용의 알고리즘 전쟁
미국과 중국은 지금 항공모함과 핵탄두만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속도로 경쟁하고 있다. 그 경쟁의 윤곽은 이미 선명하다. 미국은 팔란티어(Palantir)의 AI 전장 플랫폼과 국방부의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을 핵심 축으로 전장 자동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메이븐은 위성 영상, 드론 피드, 신호정보(SIGINT), 인간정보(HUMINT)를 실시간으로 융합해 적의 전차·미사일 발사대·병력 이동을 자동 식별하고 좌표를 찍는다. 팔란티어의 플랫폼은 이 표적 데이터에 아군 무장 상태, 기상, 교전 규칙을 결합해 지휘관에게 타격 옵션을 제시한다. 미 공군의 DASH(Decision Advantage Sprint) 실험에서는 AI가 인간보다 30배 더 많은 전술 선택지를 10초 이내에 제안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쟁의 리듬이 인간의 사고 속도를 완전히 넘어선 것이다. 중국 또한 이에 뒤처지지 않는다. 인민해방군은 ‘지능화 전쟁(智能化战争)’을 국가 군사전략으로 공식 제도화했다. 전략지원부대 산하에 AI 기반 지휘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센스타임(SenseTime)·화웨이 등 민간 AI 기업의 기술을 군사 인프라에 통합하고 있다. 중국의 WZ-8 극초음속 정찰기와 CH-6 고고도 드론은 실시간으로 광역 전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AI 분석 체계로 전송한다. 수백 대의 드론이 중앙 지휘 없이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군집 드론 시스템은 이미 훈련을 넘어 실전 운용 단계에 들어섰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미 항모전단을 겨냥한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도 AI 기반 표적 식별과 초정밀 유도 체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핵시대의 공포가 “누르면 모두가 죽는다”는 상호확증파괴(MAD)의 역설적 균형 위에 세워졌다면, AI 시대의 공포는 “내가 너보다 0.1초 더 빨리 판단한다”는 속도의 우위 위에 세워진다. 문제는 이 경쟁에 핵시대의 핫라인이나 군비통제 협정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계가 틀릴 때: ‘3분의 전쟁’의 공포
AI 전쟁의 진짜 공포는 기계가 너무 잘 싸우는 데 있지 않다. 기계가 틀릴 때 있다. 1983년 9월, 소련의 핵전쟁 조기경보 시스템이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감지했다. 오경보였다. 당직 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이건 뭔가 이상하다”는 직관으로 보고를 묵살했고, 인류는 핵전쟁을 피했다. 인간의 망설임이 세계를 구한 것이다. 그러나 AI에게는 직관도, 망설임도, 정치적 상상력도 없다. 데이터가 공격이라고 판독하면 즉시 반응하고, 그 반응은 다시 상대 알고리즘에 새로운 공격 신호로 입력된다. 많은 이들이 예상하는 미중 대만해협 위기를 가정해보자. 중국의 AI가 미 항모전단의 정상적인 기동 훈련을 실제 공격 준비로 오인한다. 혹은 미국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사이버 교란으로 인해 왜곡된 데이터를 입력받고 중국의 DF-21D 미사일 발사를 탐지했다고 판독한다. 극초음속 무기는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날아오고, 수백 대의 드론이 군집으로 쇄도한다. 인간 지휘관이 보고를 받고, 상황을 파악하고, 교전 규칙을 확인하고, 승인 버튼을 누르는 데 허용되는 시간은 얼마일까? 군사 전략가들이 말하는 ‘3분의 전쟁’은 과장이 아니다. 양측의 AI가 오판과 과잉반응의 자동화된 악순환에 빠져드는 데 인간이 개입할 시간은 이미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위험한 것은 사이버 전선이다. 앤트로픽의 차세대 모델로 알려진 ‘미토스’ 수준의 AI가 네트워크 정찰부터 취약점 탐지, 실제 공격 코드 실행까지 32단계의 복합 침투 시나리오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보고는, 미래전의 첫 총성이 어디서 울릴지를 암시한다. 상하이의 증권거래소가 멎고, 베이징의 통신위성이 교란되거나, 반대로 뉴욕의 전력망이 다운되고 부산항의 물류 시스템이 마비되는 것. 재래식 무기가 불을 뿜기도 전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다. 이 불안정성은 추상적 가정이 아니다. 미-이란 전쟁이 휴전 합의 직후에도 해상 봉쇄와 선박 나포로 흔들리는 현재 국면이, 그 불안정성을 이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외교의 실패가 만든 전쟁의 자동화
여기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쟁의 자동화는 기술의 진보이기 이전에 정치의 실패다. 외교가 멈춘 자리를 알고리즘이 대신하고, 신뢰가 무너진 자리를 자동화된 보복 체계가 메운다. 미-이란 전쟁이 보여주듯, 협상 테이블에 앉아 휴전을 이야기하면서도 해상에서는 봉쇄와 나포가 계속된다. 말은 위기관리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기계와 체계가 위기를 증폭시킨다. 이것이 AI 시대 분쟁의 새로운 문법이다. 미중 경쟁이 이 문법을 채택하는 순간, 위기는 훨씬 빠르게, 훨씬 넓은 범위에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결코 그 바깥에 서 있을 수 없다.
한반도, 가장 위험한 접점
한반도는 이 자동화된 위기의 최전선이다. 대만해협 위기가 고조되는 순간, 주한미군 자산, 한미 연합지휘체계, 미사일 방어망, 통신·사이버 인프라가 연동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문제는 그 연동이 한국 사회의 숙의와 정치적 결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맹의 군사 체계와 자동화된 위기 대응 절차에 따라 먼저 굴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시스템이 이미 우리를 전장의 일부로 편입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의 질문은 “동맹이냐 균형이냐”라는 낡은 이분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AI 전쟁 시대의 규칙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남이 만든 규칙에 자동 편입되는 나라가 될 것인가?
‘디지털 중견국’ 한국의 네 가지 선택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전략이 시작돼야 한다.
첫째, AI 군비통제 의제의 선점자가 되어야 한다. 자율살상무기 제한, 군사용 AI 운용 원칙, 위기 시 자동 보복 차단 규범은 아직 국제적으로 완성된 질서가 아니다. 강대국이 이 공백을 자기 방식으로 채우기 전에, 한국은 캐나다·호주·스웨덴·인도·인도네시아 같은 중견국과 함께 ‘AI 평화 규범’을 국제 의제로 밀어 올려야 한다. 군축 외교는 약자의 도덕론이 아니라, 전쟁 규칙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다. 지금 의제를 만드는 쪽이 미래의 질서를 설계한다.
둘째, 한미동맹 내부에 ‘인간 최종통제’ 원칙을 제도화해야 한다. 연합지휘체계 안에서 AI가 관여하는 표적 선정, 대응 시뮬레이션, 자동 방어 절차에 인간의 명시적 최종 승인 없이는 실행되지 않는 안전장치를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동맹의 약화가 아니라 동맹의 책임성 강화다. 동맹은 더 빨리 반응하는 체계가 아니라, 더 위험한 오판을 함께 막는 체계여야 한다. 한국이 이 원칙을 한미동맹 내에서 제도화한다면, 그 자체가 국제 규범의 살아 있는 선례가 된다.
셋째, 사이버 방어를 국가 생존 전략의 최상위 의제로 격상해야 한다. 미래전의 첫 총성은 미사일 발사음이 아니라 전력망 차단, 금융 시스템 마비, 통신 교란의 형태로 울릴 가능성이 크다. 전력·금융·통신·항만을 하나의 통합 국가 안보망으로 묶어 방어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하며, 국제 공조는 필요하지만 외부 방패에만 의존하는 나라는 결정적 순간에 자기 주권도 지키기 어렵다.
넷째, 미중 사이의 ‘위기관리 허브’가 되어야 한다. 핵시대에 핫라인이 생존의 최소 장치였듯, AI 시대에는 군사 AI 운용 원칙, 위기 시 통신 채널 유지, 자동화된 오판 차단 절차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신뢰구축 장치가 필요하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위험의 최전선에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장치의 필요성을 가장 절실하게 제안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지정학적 취약성을 외교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중견국 전략의 핵심이다.
정지 버튼은 아직 인간의 손에 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치다. 더 빠른 알고리즘을 만드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알고리즘이 폭주할 때 멈춰 세울 정지 버튼을 설계할 의지다. 냉전기의 핫라인은 감상적 평화주의의 산물이 아니었다. 파멸을 피하려는 냉혹한 현실주의의 결과였다. 오늘의 한국에도 그런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미중 AI 군비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어느 편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제어할 규칙을 만드는 일이다. 기계의 속도는 점점 빛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소설가의 말이 떠오른다. 소설가 김애란은 최근 손석희의 인터뷰 프로그램 「질문들」에 출연해 AI와 인간의 결정적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망설임”이라고 답한 바 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망설임은 흔히 결함으로 여겨진다. 느리고,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겁쟁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1983년 페트로프가 핵전쟁 경보를 받아들고 보고 를 묵살했을 때, 그를 멈추게 한 것도 정확히 그 망설임이었다. 데이터는 발사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잠시 멈추었다. 그 멈춤이 세계를 구했다. AI는 망설이지 않는다. 계산하고, 판단하고, 실행한다. 그것이 AI의 강점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속성이다. 극초음속 미사일이 날아오고 드론 군집이 쇄도하는 전장에서, 망설임은 패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그 망설임이 전쟁과 평화를 가르는 마지막 경계선이었음을 증명해왔다.평화는 여전히 인간의 속도로만 만들어진다. 더 정확히는, 인간의 망설임의 속도로만 만들어진다. 아직 정지 버튼은 기계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정치의 손 안에, 그리고 인간의 망설임 안에 남아 있다. 한국이 그 버튼을 움켜쥘 것인지, 아니면 남이 설계한 전쟁 시스템의 부속품이 될 것인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이란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분명하다. 전쟁은 언제나 시작보다 멈춤이 더 어렵다. 멈추는 것, 망설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기계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존엄일지 모른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한국은 다시 인간의 언어로 평화를 설계해야 한다. 망설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레바논 남부 타이어 펠사이 마을에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휴전 이후, 마을로 돌아가는 피난민들이 파괴된 다리를 건너고 있다.
"트럼프 내려와야"…美 민주당이 꺼내든 '수정헌법 25조' 위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전쟁 대응을 둘러싸고 미 민주당에서 대통령의 권한 이양을 규정한 수정헌법 제25조 발동을 촉구하면서 법안의 위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일(현지 시각) 정치 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민주당 내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이날 존 라슨 14선 하원의원은 탄핵 소추안을 발의,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직 해임 요건을 이미 넘어섰고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여기에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 70명은 수정헌법 제25조 발동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압박하는 과정에서 초강경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그가 전쟁범죄를 예고했으며 미국의 안보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협상 시한을 앞두고 연일 이란에 “오늘 밤 하나의 문명이 사라질 것”,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지옥을 보게 될 것”이라 공세를 퍼부은 바 있다. 미국 헌법상 대통령을 해임하는 대표적 수단은 의회의 탄핵이나, 수정헌법 제25조는 대통령이 참모진에 의해 권한이 박탈될 수 있는 별도의 절차를 규정한다. 미국 부통령과 내각 과반이 대통령에 대해 직무 수행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 조항을 발동할 수 있으며, 대통령 반발 시에도 부통령과 내각의 입장 유지 하에 의회가 상·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이끌어내면 최종 해임을 결정할 수 있다.조항은 본래 대통령·부통령 승계와 관련, 헌법적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1841년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 사망 당시 존 타일러 부통령의 지위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으며, 이후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계기로 도입 필요성이 더욱 확대됐다. 케네디 대통령 피격 당시 그의 생존 여부와 직무 수행 가능성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지면서 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부각됐고, 결국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이 권한대행을 맡도록 절차를 규정한 법이 제정된 것이다. 다만 수정헌법 25조는 올해 초에도 거론된 바 있다. 지난 1월 그린란드 침공을 시사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민주당 소속 에드 마키 상원의원과 시드니 캠라거도브·야사민 안사리·에릭 스왈웰 등 하원의원은 해임을 요구, 법 발동을 촉구했으며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침공을 결정한다면 탄핵을 고려할 것”이라는 비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후 그린란드를 병합하는 대신 그린란드 내 미군 기지에 대한 주권을 인정받기로 협의하면서 논란은 잦아들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 당시에도 25조는 여러 차례 거론된 것으로 관측된다. 예컨대 2018년에는 로드 로젠스타인 전 법무부 부장관이 내각 인사들을 설득해 조항 발동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비슷한 시기 뉴욕타임스(NYT)에선 “내각 내부에서 수정헌법 25조 발동에 대한 초기 논의가 있었지만 헌정 위기를 우려해 실행되지 않았다”는 고위 당국자의 말이 보도되기도 했다. 로젠스타인 부장관은 대선 기간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이 있었다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감독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거듭한 인물이다. 2021년 1월 미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 직후에도 하원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수정헌법 25조 발동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징적 조치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은 이후 조사에서 “25조 발동이 내각 내부에서 언급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실제 발동을 진지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실제로 이 조항은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을 해임하는 데 사용된 적은 없으며, 이러한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 해임에 적용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부통령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법은 총 두 차례 활용됐으며, 이 외에는 실질적인 발동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정헌법 25조가 부통령과 내각의 정치적 결단, 나아가 의회의 초당적 동의까지 요구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장벽이 매우 높다고 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2기 내각이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인사들로 구성된 점 또한 발동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로 지목된다. 실제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주요 관료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 및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