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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대통령한테 호루라기 안 불었던 여당

與, 비겁한 침묵 문화 걷어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계엄을 선포했을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0분 만에 ‘당대표 입장문’을 냈다. “계엄 선포는 잘못됐고 국민과 함께 막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위법이자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계엄 선포 뒤 나온 첫 반대 입장이었다. 집권당 대표의 발 빠른 위헌 선언은 계엄의 부당성이 확산되는 데 불을 붙였다. 그 소식이 계엄 출동하던 군인과 경찰이 소극적으로 나서게 하고, 의원들이 국회로 진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다.그런데 그날 여당 대표가 외부 수혈된 한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상황이 어땠을까. 가령 친윤석열계 인사였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그렇게 20분 만에 대통령을 강력하게 규탄하는 입장을 냈을까. 유감스럽게도 계엄 사태 이후의 여당 풍경을 보면 그럴 개연성은 극히 희박했을 것 같다.계엄 선포 사흘 뒤 여당 소속 시·도지사 11명은 탄핵만은 피해야 한다는 호소문을 냈다. 또 윤 대통령에게 거국내각 구성 뒤 2선으로 물러나고, 임기단축 개헌을 비롯한 향후 정치 일정을 밝히라고 주문했다. 개헌 약속으로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여당에선 지난 10일 중진 20명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이들은 계엄 해제 표결 불참 논란으로 물러난 추경호 전 원내대표 후임으로 권성동 의원을 추대하자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들 바람대로 권 의원은 12일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권 의원은 그냥 ‘친윤’도 아니고 ‘찐윤’이다. 윤 대통령을 가장 앞장서서 옹호해 왔다. 대통령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상황에서 ‘원조 윤핵관’을 원내대표로 세우는 당이 국민의힘이다.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주 탄핵소추안 부결 뒤 이렇게 주장했다. “탄핵안이 부결돼 참 다행이다. 대통령은 내각·대통령실을 전면 쇄신해 달라. 책임총리에게 내정을 맡기고 외교·국방에만 전념해 달라.” 이 역시 대통령이 계속 나라를 대표하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주문이다. 홍 시장은 이후 ‘계엄 선포권은 대통령 권한이고 고도의 통치 행위로 사법심사 대상이 안 된다’는 글도 썼다. 같은 당 윤상현, 조배숙 의원도 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같은 주장을 했다. 사전에 말을 맞췄는지 모르겠으나 이들의 주장은 12일 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대통령 담화에 그대로 담겼다.
여당의 이런 모습은 계엄에 충격 받은 국민들 생각과 큰 차이가 난다. 상처받은 국민을 보듬기보다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국격을 실추시킨 일을 여당에서 정치 좀 했다는 이들이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런 게 통하리라 생각한 것부터 신기하다. 민심을 진짜 모르거나 아니면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민심을 못 따라가는 여당의 초현실주의 정치와 ‘윤비어천가’ 풍조가 계엄 사태가 초래되는 데 일조했을 수 있다. 여당은 윤 대통령을 막아서야 할 때 번번이 침묵했고, 오히려 두둔하기 바빴다. 지난해 전당대회 때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려던 안철수, 나경원 의원을 대통령실이 ‘무례의 극치’ ‘국정운영 방해꾼이자 적’ 등의 비난으로 주저앉혔을 때가 대표적이다. 출마를 막기 위한 ‘전대 계엄령’이 내려졌던 셈인데 당 구성원들은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2년간 대화를 거부하고, 국회 개원식 참여를 거부했을 때도 여당에선 별 비판이 없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위한 사면(赦免) 무리수를 둘 때도, 강성 우파들만 골라 기관장에 앉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대표가 용산에서 ‘훈계’ 받듯 당하고 왔을 때도, 지난달 대통령이 하나 마나 한 기자회견을 했을 때도 대다수는 가만히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대통령과 관련한 ‘비정상’이 만연돼 있었는데 아무도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다. 한 대표가 오기 전까지 계속 그랬다.
대통령 탄핵 못지않게 이제 여당의 비겁한 침묵, 무비판적 동조, 무책임한 방조의 문화를 걷어내야 한다.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 목소리 내지 않고, 고칠 것을 고치라고 요구하지 않고, 부당한 개입에 저항하지 않고, 동료가 탄압당할 때 얼굴을 돌리는 문화를 싹 뜯어고쳐야 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땐 국민이 여당을 탄핵할지 모른다.

음모론과 충동에 휘둘리는 지도자에게 국정 맡길 수 있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방향을 정하기 위한 의원총회에서 잠시 나와 권성동 의원과 대화를 한 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12.6.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방향을 정하기 위한 의원총회에서 잠시 나와 권성동 의원과 대화를 한 후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12.6.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경우 비상계엄 같은 극단적 행동이 재현될 우려가 크다”며 신속한 직무집행 정지를 주장했다. 전날까지 탄핵에 부정적이었던 한 대표가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 한 대표는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면담한 뒤에도 “제 판단을 뒤집을 만한 말을 못 들었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위헌·불법 행위로 주권자 생명을 위협한 대통령에게 한순간이라도 국정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2차 계엄’ 가능성을 제기하며 탄핵소추안 표결 때까지 비상 대기 체제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의원 중 8명만 찬성하면 탄핵안은 가결된다.속속 흘러나오는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당시 행적에 관한 전언과 증언들은 그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게 한다. 한 대표가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힌 얘기부터 경악스럽다. 윤 대통령이 고교 후배인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주요 정치인 등을 반국가 세력으로 체포하도록 지시했고 체포한 이들을 과천의 수감 시설에 가두려는 구체적 계획까지 있었다는 내용이다. 단순히 야당을 겁주려는 경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체포 대상자는 국회의장과 정당 대표, 당직자에 그치지 않았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국회 정보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이번 기회에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위치 추적을 요청받은 체포 대상자들을 공개했다. 이에 대통령실이 부인 입장을 냈다가 돌연 취소하기도 했다. 거기엔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유튜버 김어준 씨, 선관위 위원, 노동단체 대표도 있었다. 사실이라면 어떤 기준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할 정도로 제멋대로 만든 명단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계엄 실행을 사실상 진두지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은 작전 도중 707특임단의 이동 상황을 묻는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고,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도 윤 대통령으로부터 당시 상황을 묻는 전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윤 대통령은 당정 인사들에게 “야당에 경고만 하려던 것”이라고 했다지만, 실제론 일선 사령관에게 직접 전화해 실시간 상황을 챙길 정도로 비상계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던 셈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밝힌 계엄군의 중앙선관위원회 점거 이유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김 전 장관은 300명 넘는 계엄군이 중앙선관위에 투입된 데 대해 “많은 국민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향후 수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시스템과 시설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그것이 윤 대통령의 뜻이었음을 인정했다.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버들의 4·10총선 부정선거 음모론에 얼마나 경도돼 있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윤 대통령은 이미 위헌·위법적 계엄 선포 자체로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자격을 잃었다. 이번 계엄 사태는 그간 이면에 가려 있던 윤 대통령의 비상식적이고 위험한 현실 인식, 나아가 감정적 충동적 의사결정 행태를 여실히 보여줬다. 과연 그런 생각과 성정을 가진 지도자에게 대한민국 국정의 운전대를 계속 맡길 수 있을지 근본적 의문을 낳게 했다. 국민 대다수도 고개를 돌렸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계엄 선포 이후 13%로 떨어졌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대한민국은 8년 전과 같은 5개월의 국정 공백 사태를 겪어야 한다. 이미 안보와 외교는 사실상 공백 상태에 들어갔다. 국방부 출범 이래 처음으로 장관 직무대리 체제가 가동됐고, 동맹인 미국마저 실망과 우려를 표출하는 상황이 됐다. 그뿐 아니다. 정부 정책 추진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높아지면서 연일 주가와 환율이 출렁이고 있다. 국정 리더십의 조속한 정상화 없이는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이제 윤 대통령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는 듯하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지금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불가피하고, 그게 자의가 될지 타의가 될지 선택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윤 대통령의 마지막 판단에 따라 한국 정치의 회복, 나아가 국정 전반의 정상화 속도가 결정될 수 있다. 국민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