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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17일

"중국은 우리의 적" 전 세계 뒤흔드는 트럼프의 3가지 '깊은 생각'

“중국의 지도자들은 만면(滿面)에 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지만 중국은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Despite all the happy talk in Washington, the Chinese are not our friends)”
“중국이 보기에 우리(미국)는 너무 순진하고 또 잘 속아 넘어가는 멍청한 적(敵)이다.(China sees us as a naive, gullible, foolish enemy)”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AFP 연합뉴스
 

◇“중국은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이 두 문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16번째 저서인 <Time to Get Tough: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한 말이다. 65세이던 2011년에 그가 쓴 200쪽 남짓한 이 책은 그의 세계관과 중국에 대한 관점·대응법을 명징(明澄)하게 담고 있다.트럼프가 이달 2일 시작한 관세 전쟁에 대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포기’ ‘자해(自害) 행위’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하지만 그가 동맹국까지 포함한 관세전쟁을 왜 벌이고 ‘중국 때리기’에 왜 진심인지 이유를 알아야 비판은 적실성(適實性)을 가질 수 있다. 이 책에는 15년째 그를 움직이는 세 가지 ‘깊은 생각’이 관통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1년에 낸 영문판 책(왼쪽) 9쪽에서 "나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지지한다(I'm for free and fair trade)"고 밝혔다. 그가 자유무역을 반대하거나 해체하기는커녕 더 공정하게 강화하려 한다는 방증이다. 이 책은 2017년에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Amazon, 미래의 창” width=”480″ height=”27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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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caption class=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1년에 낸 영문판 책(왼쪽) 9쪽에서 “나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지지한다(I’m for free and fair trade)”고 밝혔다. 그가 자유무역을 반대하거나 해체하기는커녕 더 공정하게 강화하려 한다는 방증이다. 이 책은 2017년에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

◇①미국, 더이상 ‘호구’ 노릇 안 한다

세계에 대해 트럼프가 갖고 있는 생각은 ‘미국이 세계의 호구(虎口·어수룩하게 이용만 당하는 사람 또는 국가) 노릇을 해왔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당시 40년 비즈니스맨 삶을 마감하고 정치 활동을 향한 출사표(出師表) 성격으로 낸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미국이 온갖 국가한테 바보처럼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계의 호구로 전락했구나 하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허울좋은 핑계로 이런저런 치다꺼리는 다 하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커녕 실속 없이 남 좋은 일만 실컷 한다며 조롱만 받고 있다.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Every day in business I see America getting ripped off and abused. We have been a laughingstock, the world’s whipping boy, blamed for everything, credited for nothing, given no respect. You see and feel it all around you, and so do I)”
그는 “지금 현재 미국인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이 푸드 스탬프(food stamp·정부가 빈곤자 구제를 위해 나눠주는 식품 교환권)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다른 국가에 이용 당해왔고 괴롭힘을 당해왔다(But for too long we’ve been pushed around, used by other countries). 그리고 국가 부채를 얼마나 빨리 늘리느냐, 또 자신들에게 득(得)이 되는 국가 사업에 세금을 얼마나 많이 들어붓느냐로 성공 여부를 가늠해온 정치인들 때문에 미국 국민만 푸대접 받아왔다.”

한 흑인 미국 시민이 푸드 스탬프의 일종인 푸드 쿠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푸드스탬프(Food Stamp)는 미국의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해 식료품 구입비를 지원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하나다./sns
한 흑인 미국 시민이 푸드 스탬프의 일종인 푸드 쿠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푸드스탬프(Food Stamp)는 미국의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대해 식료품 구입비를 지원하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하나다./sns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2025년 2월 13일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동맹 회원국 대표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느 누구도 미국을 호구(sucker)로 삼으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충분한 능력이 있는 나토 회원국들이 안보와 국방을 미국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sns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2025년 2월 13일 브뤼셀에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동맹 회원국 대표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그 어느 누구도 미국을 호구(sucker)로 삼으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충분한 능력이 있는 나토 회원국들이 안보와 국방을 미국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sns

그는 그러면서 “중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미국을 상대로 돈을 뜯어가고 있다. 이대로 내버려두기에는 지금 우리의 상황이 너무도 위험스럽다. 지금 이 시점은 말할 수 없이 중차대하다”며 “지금과 같은 길 위에 계속 있다면 미국은 절대 다시 부강해질 수 없다(There’s no way America can become rich again if we continue down the path we’re on)”고 했다.

9년 새 두 배된 국가부채…하루 이자만 4조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상징되는 세계 무역 질서와 미국이 동맹국들의 안보를 책임지고 도와주는 구조에선 미국이 계속 힘들고 가난해진다는 진단이다. 미국의 실상(實相)은 그의 주장이 과장(誇張)이나 허풍(虛風)이 아님을 증명한다. 단적으로 그가 이 책을 출간한 2011년 말 14조 달러대였던 미국의 국가부채(national debt)는 2015년 18조 달러, 2024년 36조 달러를 넘었다. 불과 9년 만에 두 배로 불어난 것이다.

미국 국가부채는 2015년 18조 달러에서 2024년 11월 36조 달러를 돌파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미국 국가부채는 2015년 18조 달러에서 2024년 11월 36조 달러를 돌파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는 미국이 1976년부터 2024년까지 49년 연속 무역 적자 수렁에 빠져 있는데다가, 방만한 정부 지출 등으로 2조달러 안팎의 연방 재정 적자가 매년 추가되고 있어서다. 미국은 국가부채 이자를 갚기 위해 올 들어 매일 30억달러(약 4조 3000억원)를 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부채에 따른 총 이자비용은 1조 달러를 넘어 연간 총국방비 보다 많다.

2025년 2월 기준 미국이 갖고 있는 36조 2000억달러의 국가 부채는 세계 경제력 기준 2~6위인 중국, 독일, 일본, 인도, 영국 등 5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를 합한 것과 맞먹는다./자료=Peter Peterson Foundation
 
2025년 2월 기준 미국이 갖고 있는 36조 2000억달러의 국가 부채는 세계 경제력 기준 2~6위인 중국, 독일, 일본, 인도, 영국 등 5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를 합한 것과 맞먹는다./자료=Peter Peterson Foundation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이 2011년 10월 18일 백악관 ‘올드 패밀리 다이닝 룸’에서 만찬에 앞서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공손한 자세로 서로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외국 국가정상을 위한 사상 최초의 '사적(私的) 만찬’을 베풀며 후진타오를 환대했다. 두 정상은 회담록 작성 없이 양국 관계의 상황과 발전 방향 등을 논의했다./조선일보DB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 왼쪽)이 2011년 10월 18일 백악관 ‘올드 패밀리 다이닝 룸’에서 만찬에 앞서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공손한 자세로 서로 인사하고 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외국 국가정상을 위한 사상 최초의 ‘사적(私的) 만찬’을 베풀며 후진타오를 환대했다. 두 정상은 회담록 작성 없이 양국 관계의 상황과 발전 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다른 접근법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만나 점잖고 공손한 말만 하는 버럭 오바마 대통령 사례를 들면서 유약(柔弱)한 ‘부디 제발 외교(Pretty Please Diplomacy)’로는 미국의 국력과 위상이 더 추락할 뿐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다. “미국이 부(富)와 영광을 되찾으려면 다른 나라에 거칠고 강경해야 한다.(Restoring American wealth will require that we get tough) 미국을 더 강하고, 안전하고, 더 자유로운 국가로 만들고, 상대 나라가 아니라 우리 조국에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동맹국에 무임승차 중단·국방비 증액 요구

이 대목에서 트럼프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주한미군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이 조국인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한국은 미군이 자국을 방어해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미국)가 더러운 일을 하도록 요청할 필요가 없다(But they don’t need us to do their dirty work). 한국은 스스로 60만~70만명의 군대를 갖고 있다. 그런데도 왜 2만 8500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가? 한국은 왜 (주한미군 관련된) 비용을 전부 부담하지 않는가(Why isn’t South Korea footing the whole bill for our defending them)? 현재 그들은 비용의 일부만 내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2025년 3월 10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정찰기 RC-12X 가드레일이 이륙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처음 실시된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한미연합 훈련의 일부다./뉴스1
 
2025년 3월 10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정찰기 RC-12X 가드레일이 이륙하고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처음 실시된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 한미연합 훈련의 일부다.

이와 관련해 수미 테리 전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5월 “트럼프가 2024년 초까지 ‘주한미군 유지 비용을 왜 미국이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125차례 제기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집권 1기에 주한미군 방위비 부담금을 50억 달러로 늘릴 것을 요구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올들어 일본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대만에 대해 GDP의 3%, 5%, 10% 수준으로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잘 사는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free riding)’와 ‘호구 노릇하는 미국’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14년 전 문제의식에서 연원한다.

◇②중국을 거칠고 강하게 다루라

트럼프는 21세기에 활동하는 미국 정치인을 통틀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중국 위협론을 제기하면서 대응법을 고민한 인물이다.그는 이 책에서 “중국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막강(莫强)하다. 중국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지, 그 위력이 미국 경제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칠지 가늠하기 어렵다”며 미국의 최대 위협 세력으로 중국을 꼽았다. 트럼프의 말이다.“중국 경제는 7년 마다 2배로 성장하고 있으며 매년 3000억달러씩 대미 무역 흑자를 내 3년 마다 우리 돈을 1조 달러씩 챙겨간다. 중국은 지금 세계 제일의 제조국이자 수출국이 됐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경제는 매년 9%에서 10%의 성장률(※2011년 기준)을 기록했다. 2011년 1분기에만 중국 경제는 9.7%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은 1.9%였다. 이는 국가적 수치(羞恥)다.(It’s a national disgrace)”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경제력 이용해 美 붕괴 시도하는 중국

그는 “중국은 미국 인구의 네 배에 해당하는 인구와 매년 700만명씩 배출되는 대학생, 수학·읽기·과학 성적 세계 1위인 우수 인력 등을 군사 및 무기 산업 부문에 투입해 스텔스 전투기, 최첨단 공격용 잠수함, 정밀 방공 시스템, 첨단 우주 방어시스템 개발과 탄도 미사일 비축 같은 군사·무기 산업을 키우고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중국은 산업 스파이 행위와 사이버 전쟁, 미국 제조업 기반 붕괴 시도, 환율 조작 등 세 가지 위협을 가하고 있다. 2009년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이버 테러(cyber terror)를 통해 누군가가 3000억 달러가 투입된 통합 전투기 프로젝트에 관한 극비 정보를 빼내갔다고 전했다. 미 당국자는 사이버 테러를 자행한 국가로 중국을 지목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3월 25일자에서 "중국의 사이버 해킹 역량이 더 거대하고 우수하고 비밀스럽게 발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Economist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5년 3월 25일자에서 “중국의 사이버 해킹 역량이 더 거대하고 우수하고 비밀스럽게 발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FBI가 홈페이지에 지명수배해 놓고 있는 스파이 혐의 도주자 명단. 18명 가운데 9명이 중국인이다./FBI홈페이지
 
                                                                                       미국 FBI가 홈페이지에 지명수배해 놓고 있는 스파이 혐의 도주자 명단. 18명 가운데 9명이 중국인이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우리의 자식들 더 나아가 우리 후손의 미래를 파괴하는 자들이 ‘적(敵)’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적이란 말인가? 나에겐 그것이 ‘적’”이라며 새로운 대응법을 제안했다. “해법은 있다. 강하고 거칠게 나가라!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라(Here’s the solution: get tough! Slap a 25 percent tax on China’s products). 기업하는 사람 중에 광대한 미국 시장에 등 돌릴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확실한 패를 쥐고 있는데 왜 저자세(低姿勢)로 나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강경한 자세로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의 기만(欺瞞) 행위로 발생했던 무역 적자를 해소할 수 있다.”

◇“중국은 미국에 위해(危害)적인 국가”

이런 신념을 견지해온 트럼프는 2018년 7월 중국의 대미 수출품 500억 달러 어치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대(對)중국 무역 전쟁을 점화했다. 2017년 중국의 경제력(GDP 기준)이 미국 대비 역대 사상 최고인 66%로 치솟은 바로 다음해였다.올해 4월 9일 트럼프가 중국을 제외한 56개국에 대해 상호 관세를 90일 동안 유예하고 중국에 대해선 145% 관세율을 매긴 것 역시 ‘중국은 미국에 위해(危害)적인 국가“라는 확고한 세계관에 기초한다.

미국 백악관이 2025년 4월 9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X'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 중국에 125%까지 보복관세, 그외 국가들에게는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다는 내용이다./X
 
미국 백악관이 2025년 4월 9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X’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 중국에 125%까지 보복관세, 그외 국가들에게는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14년 전에 비해 중국 경제가 커지고 관세 내성(耐性)이 생겼으므로 당시(25%)보다 훨씬 높은 관세를 이번에 때린 것이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계기로 폭증했다. 중국은 이후 대미 직접 수출을 줄이고 멕시코·베트남·태국 등으로 우회 수출을 늘렸다. 그러나 대중 무역 적자는 2022년에 3829억 달러로 미국 건국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최근 중국이 대미 무역 기지를 아세안과 멕시코 등으로 다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직접 대미 무역 흑자는 연간 3000억 달러에 이른다./자료=미국 상무부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최근 중국이 대미 무역 기지를 아세안과 멕시코 등으로 다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직접 대미 무역 흑자는 연간 3000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을 실질적인 미국의 주적(主敵)으로 못박은 트럼프의 관점은 후임 조 바이든 정부도 그대로 승계했다. 로버트 라이트 하이저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023년 낸 저서 <No Trade is Free>에서 “중국과의 무역은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고 끊임없이 미국의 행동을 왜곡시키는 아킬레스 건(腱)”이라며 “미국은 상품 교역 적자 형태로 중국에 지금까지 6조 달러의 부(富)를 넘겨줬다. 미국과 중국 경제의 전략적 디커플링(de-coupling·분리)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78)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그가 76세이던 2023년에 출간한 저서/조선일보DB
 
                                                                                            로버트 라이트하이저(78)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그가 76세이던 2023년에 출간한 저서

◇③불편한 美 현실 직시하고 행동하라

미국이 당면한 국가 현실과 중국의 심각한 위협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해결하려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는 거짓말, 허풍·과장과 거리가 먼 진지(眞摯)한 정치인이다.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현타주의자(현실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적 생각과 세계관의 소유자라 볼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중국에 기만당해왔다. 사업하면서 만나봤던 중국인 중에는 오바마가 왜 중국 정부에 그렇게 놀아나는지 모르겠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강경하게 나가는 협상가라야 중국을 제압할 수 있다(A tough negotiator can make the Chinese back off). (중략) 중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적으로 생각한다. 백악관 사람들은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

트럼프가 2011년 10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그는 "중국이 우리의 국가안보와 기업 비밀을 훔치고 있는데 왜 우리는 한가하게 앉아만 있는가? 중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고 강조했다./sns
트럼프가 2011년 10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 그는 “중국이 우리의 국가안보와 기업 비밀을 훔치고 있는데 왜 우리는 한가하게 앉아만 있는가? 중국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고 강조했다.

◇“강경하게 나가야 중국 제압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정치 지도자란 사람들은 제발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넋 놓고 있으면 우리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중국이 우리 주머니를 탈탈 털어갈 것이다. 우리가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하는데 가져가는 사람만 탓할 수 있겠는가?(The Chinese will take and take and take until we have nothing left-and who can blame them if they can get away with it)”
트럼프는 미국 지도부가 중국의 잘못된 행태를 고치지 못한다면, 미국의 후손(後孫)들이 큰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이다. “다가올 수 년 내에 우리의 자녀들이 중국의 위협을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중국에 맞서 그들이 공공연히 우리의 군사 및 기술 분야의 기밀을 훔쳐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世代)가 비참(悲慘)해질 것이다. 중국이 우리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순진하거나 무능하거나 아니면 둘 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중국에 맞서려는 의지(意志)를 가진 대통령이다. 중국에 고개 숙여선 안 된다.(All we need is a president willing to stand up, not bow down, to China)”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온라인 뉴스 전담 군인들이 충칭시에 있는 군 부대에서 집단 작업하고 있는 모습. 2013년 촬영된 사진이다./AP연합뉴스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온라인 뉴스 전담 군인들이 충칭시에 있는 군 부대에서 집단 작업하고 있는 모습. 2013년 촬영된 사진이다./AP연합뉴스

그는 중국을 ‘미국의 적’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중국과 화해해 함께 행복하게 동행하는 미래를 희망했다.

“중국은 우리의 적(敵)이다. 우리도 지금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우리가 제대로 일한다면, 중국은 미국을 완전히 새롭게 존경하게 될 것이다. 그후에 우리는 중국과 친구로서 행복한 미래로 함께 여행할 수 있다.(China is our enemy It’s time we start acting like it and if we do our job correctly, China will gain a whole new respect for the United States and we can happily travel the highway to the future with China as our friend)”

◇“물렁물렁한 대통령은 국가에 누(累) 된다”

이를 위해 트럼프는 “중국에 강경하게 나갈 수 있는 사람, 중국의 술수(術手)에 휘둘리지 않는 단호하고도 능수능란한 협상력을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트럼프 주식회사'의 조지 로스 수석 부사장이 2006년에 쓴 책 <트럼프 스타일 협상>. 트럼프 대통령이 서문을 썼다./Amazon” width=”283″ height=”425″></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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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caption class=‘                                                                         트럼프 주식회사’의 조지 로스 수석 부사장이 2006년에 쓴 책 <트럼프 스타일 협상>. 트럼프 대통령이 서문을 썼다.

“우리가 그간의 물렁물렁한 태도를 버리고 강하게 나간다면 미국은 다시 부자 나라가 돼 존경받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최고 협상가(chief negotiator)이자 거래 성사자(deal-maker)이다. 대통령이 강한 협상가로서 올바른 거래를 한다면, 미국은 승리한다. 반대로 상대에 눌려 국가에 누(累)가 되는 방향으로 거래하면, 우리들과 자손들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숙고 거친 ‘관세 전쟁’, 상당한 성공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보다 더 강력하게 관세 전쟁과 중국 압박 공세를 펼치고 있다. 그의 행보가 속도감 있게 탄력받는 것은 심중(心中)에 애국심(愛國心)에 기반한 청사진과 확고한 신념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순간순간 내놓는 말과 단편적인 행동만 보고 트럼프를 ‘또라이’ ‘허풍장이’ ‘돈만 밝히는 미치광이’로 간주하는 시각은 오판(誤判)일 공산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4월 2일(현지시각)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그는 같은달 10일 0시1분부터 중국산 수입 제품에 145% 관세를 적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sn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4월 2일(현지시각)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 그는 같은달 10일 0시1분부터 중국산 수입 제품에 145% 관세를 적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해 “미국 경제와 리더십, 브랜드 파워를 해치는 자충수(自充手)이므로 최종적으로 실패할 것”이라 입을 모은다. 이는 경제학의 기존 이론 잣대에서만 보는 시각이다. 트럼프는 적어도 15년 가까이 관세 전쟁의 필요성과 성공법을 창조적으로 숙고(熟考)하고 벼르며 준비해 왔다. 그렇기에 이번 관세 전쟁의 성공 가능성을 무조건 낮게 보고 폄하하는 것은 단견(短見)일 수 있다. 시진핑의 중국이 트럼프의 미국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들도 많다.트럼프는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전 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조성한 뒤 중국을 고립(孤立)시켜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세계 무역·경제 질서와 구조를 바꾸려 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사의 큰 물줄기를 바꿀 이 ‘새판짜기’를 트럼프는 신(神)으로부터 부여받은 소명(召命)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개헌,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마침내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왔다. 재판관 8인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됨으로써 12.3 친위쿠데타는 넉 달만에 비로소 진압됐다. 비록 선고가 기대보다 한 달은 더 늦어졌지만, 그래도 내란 우두머리를 대통령직에서 결국 파면했으니 일단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탄핵 인용이라는 결론만큼이나 뜻깊은 성과가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담긴 민주공화국의 기본 원칙에 대한 재확인이다. 판결문은 12.3 비상계엄이 위헌, 위법인 이유를 추상같이 정리할 뿐만 아니라, 친위쿠데타에 기습당한 대한국민의 공통의 이상과 원칙, 즉 민주주의, 국민주권주의, 정치와 법치 등등을 거의 감동적일 정도로 명쾌하게 제시했다. 앞으로 시민 정치 토론의 필독 문헌으로 널리 읽히고 기억될만하다. 요컨대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민주공화국의 역사적 현실태인 제6공화국을 반민주적 반역 시도로부터 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탄핵심판 선고가 있고 이틀 뒤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제6공화국 헌법의 상당한 개정, ‘개헌’을 제창하고 나섰다. 급한 대로 원내 정당들이 합의한 만큼 1차 개헌안을 마련해 이에 대한 국민투표를 조기 대선과 동시에 실시하자는 것이다. 나는 친위쿠데타 발발 전부터 여러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제7공화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또한 내란 정국에서도 정치의 복원과 재구성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재구성’의 여러 과제 중 하나로 ‘개헌의 정치’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나는 우원식 의장의 개헌 제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반갑기도 하지만, 우려도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헌하려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일대에서 탄핵에 찬성한 시민들이 헌재의 파면 선고에 환호하고 있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

 

우원식 의장의 성명에 깔린 핵심 메시지는 제6공화국 헌정의 대대적 개혁이 내란 진압 이후 필수 과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야 물론 두 손 들어 환영이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두 가지 무리한 제안을 함께 내놓았다. 하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차 국민투표로 다룰 개헌안에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우선 시기 문제부터 보자. 조기 대선과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하는데, 대선은 지금 불과 두 달 남았다. 즉 8주 안에 개헌안을 정리하고 국회 심의와 합의, 의결을 거치며 국민 전체에게 개헌안을 알리고 국민투표까지 마치자는 것이다. 그것도 대통령선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말이다. 아무리 봐도 무리다. 의지가 너무 앞서서 현실을 냉정히 고려하지 않은 제안이다. 게다가 이런 조급한 태도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한민국의 과거 헌법 개정에서 드러난 한계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이 충족해야 할 21세기 민주주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제6공화국 헌법 제정 과정을 돌아보자. 1987년 6월에 민주항쟁이 있었고 7월부터는 노동자대투쟁이 벌어졌지만, 개헌안을 입안한 주체는 당시 국회 안의 주요 정당들이었다. 거리의 시민이나 투쟁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직접 반영될 통로는 없었던 반면에 광주학살 원흉이자 군부독재 집권당인 민주정의당은 원내 제1당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현 헌법의 뼈아픈 태생적 한계다. 법률적 절차는 하나도 위배하지 않은 개헌 과정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1987년의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두 달 안에 개헌(‘1차’라는 한정을 달더라도)을 추진한다면, 이 역사적 경험이 고스란히 반복될 것이다. 우원식 의장은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자고 제안했지만 기한이 빠듯할수록 원내 양대 세력,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개헌특위를 일방적으로 이끌 수밖에 없다. 민주항쟁의 타도 대상이었던 민주정의당이 새 헌법 기초자로 이름을 올린 것처럼, 기존 헌정 체제의 문제아로 지목된 양대 정당이 그 헌정 체제를 바꾸자는 개헌마저 다시 좌우하게 된다. 게다가 양대 세력 중 한 쪽 축인 국민의힘의 현 상태가 어떠한가? 친위쿠데타 발발 이후 국민의힘은 한 번도 당 차원에서 헌정 유린을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극우파의 선동 논리와 음모론, 폭력 시위에 부화뇌동했다. 지금도 한덕수, 최상목에게 위헌, 위법 행위를 이어가라고 훈수하는 정당이 국민의힘이다. 이렇게 ‘있는 헌법’도 지킬 의사가 없는 정당이 어떻게 ‘새 헌법’을 만드는 논의에 낄 수 있겠는가.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데 지금으로부터 3년이나 뒤인 2028년에 총선을 새로 치르기 전까지는 어쨌든 국민의힘이 국회 의석 3분의 1 이상을 점한다. 앞으로 3년 동안은, 위헌적 내란 동조 행위를 일삼게 된 거대 정당의 저항과 교란에 맞서며 개헌을 추진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한 개헌 추진 세력이라면 일단 국민의힘이 최소한 내란 동조 행위를 반성한다는 당론을 확정하기 전까지는 개헌 논의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회보다 더 폭넓은 개헌 논의의 장을 열어 국회 내 교착 상태를 돌파해야 한다. 만약 이런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개헌안을 어떻게든 급조한다면, 내용의 부실함이라는 문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더 심각한 문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바로 국민투표라는 최종 심판이다. 과거에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개헌을 강요하거나 정당 엘리트들끼리 개헌안을 합의하더라도 국민투표 결과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웬만하면 과반수 찬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어느 나라에서든 시민들은 투표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준비가 돼있다. 정치권 다수가 합의한 안건이라도 국민투표를 통해 쉽게 부결될 수 있는 시대다.
더구나 지금 한국 사회는 내란 사태의 여진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 국민투표가 실시된다면, 개헌안 내용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도 이를 마련하는 데 참여한 특정 정당에 대한 ‘심판’이 투표의 주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든 반대쪽을 심판하려는 의지에 충만한 이들이 급조된 개헌안에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정치적 의지를 표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게 되면, 함께 실시되는 조기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개헌 국민투표에서 찬성표가 과반에 못 미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치명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급하게 개헌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21세기 민주주의의 기대와 요구에 부합하는 개헌 과정을 세심하게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이후에 개헌을 추진한 주요국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칠레 등은 모두 의회 밖에 시민 참여 숙의기구를 따로 만들어 몇 년에 걸쳐 개헌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광범한 부분이 논의에 참여했으며, 기존 주요 정당들의 낯익은 주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의견이 등장해 서로 충돌하고 수렴했다. 이것은 8주라는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는 이뤄질 수 없는 실험이다. 내란을 진압하는 데만 4개월 넘게 걸렸다. 그렇다면 새 민주공화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는 적어도 그보다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개헌 과정의 시작은 새 정부 출범 이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의제 토론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다음으로 의제 문제다. 우원식 의장은 조기 대선과 동시에 실시되는 국민투표에서 다룰 1차 개헌안이 ‘권력구조 개편’ 내용을 꼭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헌을 추진하자는 정치-사회적 합의”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개헌안”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기반이 형성되었다”는 견해를 달았다. 그럼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권력구조 개편’ 내용은 무엇인가? 성명문에는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원식 의장은 기자들에게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둘 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자주 이야기되던 방안들이다. 그러나 과연 여의도 정치를 넘어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의회제(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의회제(이원집정부제) 등등에 관해 정말 시민 사이에서 토론이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는가? 누구도 ‘그렇다’고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우원식 의장은 이 대목에서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정치 엘리트들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제6공화국 내내 ‘개헌’을 이야기하며 상층 논의에만 머물던 이들의 한계와 오류에서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부터도 기사에 언급된 내용들만으로는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됐다고 인정하기 힘들다. ‘국회의 국무총리 추천권’은 국회와 정당의 정치적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도대체 어떤 점에서 한국식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처방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식 대통령제가 본토에서마저 삐걱대는 지금, 왜 한국의 권력구조를 전보다 더 미국에 가깝게 만들어야 하는가? 만약 두 내용이 함께 담긴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의된다면,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많은 이가 어쩔 수 없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논의의 지난한 과정이 도달할 종착점이지 그 시작을 여는 출발점일 수는 없다. 결국은 현 대통령제와 다른 질서를 만들어보자고 개헌 토론에 나서는 것이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는 가까운 미래 안에 한국 사회에서 어떠한 새로운 다수 합의도 쉽게 형성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학자 김윤철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개헌 관련 토론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적어도 10년 이상은 내다보고” 토론을 이어가야 할 주제다. 그 와중에 부분적으로 형성되는 합의를 그때그때 제도에 반영하면서 말이다.
반면에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진짜로 “구체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다른 의제들이 있다. 가령 ‘비상계엄’ 문제가 있다. 비상계엄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비상계엄의 이유로 “전시”만을 남기는 것과 같은 개헌을 통해 비상계엄이 다시 친위쿠데타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한덕수, 최상목 등이 위헌, 위법적 통치를 자행할 수 있게 한 ‘대통령 권한대행’ 조항도 손봐야 하고, 국회가 이미 선출한 헌법재판관에 대해 굳이 대통령의 임명 절차를 덧붙인 대목도 개정해야 한다. 2025년 4월 4일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이런 개헌안을 감히 목소리 높여 반대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개헌 과정은 바로 이런 의제들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의제들은 권력구조 개편에 비하면 지나치게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떤 완결된 새 헌정의 즉각적 실현이 아니라, 헌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사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고’ 새로운 내용으로 ‘바꿀 수 있음’을 확인하는 집단적 경험이다. 이것은 지난 30여 년간 한국 사회가 잃어버렸던 감각이고 기억이다. 일단 이 능력을 되살림으로써만 우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차리고’ ‘바꿀’ 의지와 용기 또한 갖추게 될 것이다. 일상에서 개헌 수준의 변화에 대한 모색이 줄기차게 계속되도록 만드는 ‘개헌의 정치’가 어쩌면 ‘개헌의 문구적 실현’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전까지 해야 할 일

 

그렇다고 우원식 의장의 제안에 담긴 진심마저 의심하지는 않는다. 친위쿠데타를 준엄하게 꾸짖지도 못하면서 ‘개헌’ 운운하던 이른바 원로들과, 12월 3일 밤에 친위쿠데타를 좌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회의장의 발언을 동급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란 진압 이후의 과제로 제6공화국 헌정 질서 개혁을 강조하려다 보니 일정과 의제를 무리하게라도 제시한 것이라 본다. 사실 그만큼 효과도 있었다. 그 동안 개헌에 관해 입을 다물고 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우원식 의장 발언이 있고 난 다음날 개헌 관련 입장을 처음으로 상세히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의 자폭 이후 더욱 가난해진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바람직한 상호작용이다. 지금부터 조기 대선, 그리고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상호작용이다. 당장의 목표와 최종 방향을 열어둔 채로 개헌에 대해 더 많은 의견을 제출하고 더 활발한 토론을 전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선 주자들이 책임 있게 개헌에 관한 논쟁을 주고받아야 하고, 그럼으로써 새 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착수할 개헌 과정에 대한 일정한 합의를 형성해가야 한다. 이것이 헌법을 정말 ‘제대로’ 바꿔나가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두 달 동안 해야 할 일이다.

'계엄 망상'에 이어 윤석열의 '대선 망상'이 시작됐다

윤석열은 권력이 무너진 자리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망상에 의한 계엄이 실패한 후, 그는 다시 새로운 정치를 꿈꾸고 있다. 패잔병의 정치가 시작됐다. 그래서 여기에 또 다른 망상 하나가 추가된다.

 

망상 시즌 1.
윤석열은 서류 속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는 이미 발생한 범죄를 서류로 정리하고 증언을 수집하고, 논리를 꿰맞추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기소해’라고 하면 기소하는 일사불란함, 그리고 범죄자의 유죄를 입증했을 때의 그 짜릿함을 윤석열은 잊지 못했다. 윤석열은 검찰 조직을 국가 통치의 모델로 삼았다. 그 외의 세계에는 무지했다. 명령과 복종, 보고와 결재, 서류와 기록의 질서. 윤석열에게 국가는 그 질서를 확장한 거대한 사무실이었고, 통치는 그 조직을 단속하는 일이었다. 명령하면 움직이는 구조에 길들어 있었고, 그 질서를 세계의 본질로 착각했다. 그의 세계에선 공소장이 곧 권력이고, 사건의 통제는 법률적 문장으로 완성돼 왔다.하지만 계엄은 범죄를 실행하는 일이었다. 이미 발생한 사건의 조각을 수집하는 게 아니고, 조각을 맞춰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일을 개척하는 일이다. 군대는 검찰의 상명하복, 일사불란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자신이 거느렸던 수하 검사들처럼 군인들도 명령에 맞춰 임무를 딱딱 실행할 줄 알았다.
윤석열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 그는 군인들이 평시에 전투식량과 통조림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군 시스템에 무지한 그는 검찰의 지휘 체계를 군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검찰 조직의 습성을 군대에 그대로 투영했다. ‘기소해’ 하면 기소하던 그 마법같은 일이 계엄 상황에서 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로 거대한 망상이었다. 진짜 세계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군인은 검사가 아니고 시민은 수사관이 아니다. 언론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기관이 아니고, 정치는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계엄은 예외상태의 선언이다. 윤석열은 그 예외 상태를 검찰의 질서로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세계는 서류 너머에 있었다. 그는 그 너머를 알지 못했다. 그는 미지의 세계를 통제하려 했고 그 무지는 자기 파괴로 귀결됐다.

 

망상 시즌 2.
첫 번째 망상에 실패한 윤석열은 두 번째 망상을 꿈꾼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자는 실패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의 측근, 이완규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다. 헌재에 의해 파면된 자가, 그 헌재에 그림자를 이식하고 있다. 헌법의 심판을 받은 자가 헌법을 모욕하려고 하는 불쾌한 장면이다. 그는 최악의 방식으로 공화국에 복수하는 꿈을 꾸고 있다. 친윤계는 그 한덕수를 ‘대선 주자’로 키우려는 망상에 빠졌다. 참고로 한덕수의 대선 지지율은 11일자 한국갤럽 기준 2%다.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그는 대통령 관저에서 여전히 정치인들을 만난다. 나경원, 윤상현, 전한길 등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만나 말을 흘리고, 건재를 과시하려 한다.윤석열을 만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가 “사람을 쓸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배신에 깊이 상처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는 해석이 따랐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막판에 뒤집어 진 것으로 생각하시고 매우 상심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윤석열 1호 대변인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분은 뭐든지 낙관적이다. 전망을 낙관적으로 하는데 근거는 없다. 뭔가 준비를 잘해서 낙관적인 건 아니다. 다만 그게 이제 끝나고 나면 평가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한다”며 “엑스포 문제라든가 뭐 대왕고래 문제라든가 의대 정원 문제라든가 이런 정책들도 굉장히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했는데 평가할 땐 주변 사람들한테 책임을 돌리는 그런 캐릭터”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다. 그는 헌재의 탄핵 인용도 예상하지 못하고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탄핵되자 ‘불충한 사람들’의 ‘배신’을 토로하고 있다. ‘배신자 프레임’은 그의 유일한 무기다. 박근혜가 유승민에게 굴레를 씌운 것을 윤석열은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그는 의욕적이다. 계엄령에 군대를 동원할 때처럼, 그는 국민의힘이 자신의 손발이 되어 대선을 치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처럼 국민의힘도 자기 명에 딱딱 움직이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찾아온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대선에 승리하시라”고 말하는 것도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정말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해 자신을 사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그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권력을 잃은 윤석열에게 정치는 망상의 연장이다. 권력은 기억보다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곧 현실을 마주할 것지만, 그 현실을 부정할 것이다. 기억을 지우고, 현실을 왜곡하며, 끝내 자신을 신화로 포장하려 할 것이다. 내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인용된 여론조사 개요. 한국갤럽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 대상 전화면접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은 14.9%.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시가행진 중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2024.10.1 

“尹 사저 경호 139억·文 49억·朴 67억…아방궁 꿈꿨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기 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출처 =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기 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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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1일 “윤석열 사저 경호 시설 예산이 139억원으로, 전임자들의 2배”라고 주장했다. 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석열은 아방궁에서 살기를 꿈꿨는가”라며 이같이 밝혔다.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저를 퇴거하기 2시간여 전에 SNS에 글을 올린 민 의원은 “민간인 윤석열 씨의 국가시설 불법 점거가 드디어 끝난다”며 “파면 후 즉각 퇴거가 마땅했지만, 일주일 말미를 준 것은 이사 준비를 위해 국민이 인도적으로 부여한 최소한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이어 “그런데 아직 대통령 놀음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윤석열은 정작 그 기간 국힘 지도부와 소위 ‘잠룡’들, 전한길 씨 등 극우 활동가들을 만나며 거창한 환송 파티를 즐겼다”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만약 윤석열 환송 파티에 국민 혈세가 단돈 1원이라도 쓰였다면, 이에 관련된 자들에게 마땅한 책임을 묻고 사용된 돈을 모두 환수해야 한다”며 “더욱이 통상 집권 4년 차에 편성되는 대통령 퇴임 후 사저 경호 시설 예산이 윤석열의 경우 집권 3년 차에 전임자들의 2배가 넘는 139억원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그가 밝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 시설 예산은 67억원, 문재인 전 대통령 49억원이다.민 의원은 “윤석열은 퇴임 후 막대한 경호 시설 예산으로 자신만의 아방궁이라도 꾸미려고 했던 것일까요?”라면서 “아니 퇴임을 생각하긴 했던 것일까요?”라고 반문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 각종 의혹 리스트에 사저 경호 시설 예산 의혹이 한 줄 더해져야 할 듯하다”며 “윤석열 내란 종식을 위한 과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안전자산 지위 흔들리는 美달러·국채 … 심상찮은 위기 징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세계 각국에 투하한 ‘관세 폭탄’이 미국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중국이 보복관세를 발표하면서 관세 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주가(S&P500)가 3일부터 나흘 새 12%가량 급락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 국채와 달러화를 내다 파는 투매 조짐까지 일었다.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지난 7일 연 3.86%에서 이틀 만에 4.5%까지 급등한 것은 미 국채에 대한 광범위한 매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 역시 11일 장중 한때 100 밑으로 밀렸다. 이는 2023년 7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달러화와 미 국채의 글로벌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에 대해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이 문제 많은 신흥시장처럼 대우를 받고 있다”고 평했다. 글로벌 위기를 부추기고 있으니 시장의 신뢰가 떨어진 결과 아니겠나.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이미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미 국채위기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작년 말 기준 35조4600억달러에 이른다. 연간 이자만 1조1300억달러다. 그런데도 미 국채와 달러화가 안전자산 역할을 한 것은 독립된 중앙은행과 민주 정부가 그 가치를 지킬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그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불안 요인이다. 달러화나 미 국채를 대신할 안전자산이 없는 상황에서 두 자산의 신뢰가 흔들리면, 투자자들이 ‘현금 보유’로 내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머스 전 장관은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에 의해 유발된 심각한 금융위기”의 가능성을 경고했다.트럼프가 9일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중국 제외)한 것은 다행이지만, 언제 그가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한국은 지금 ‘미국발 리스크’에 대비한 시스템 점검에 착수해야 한다. 외환보유액과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을 점검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경제주체마다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절박한 각오가 필요하다.

'윤석열 장모 변호사'가 헌법재판관 후보에?…"나라를 어디까지 말아먹으려는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퇴임을 앞둔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장모 변호인 이력을 가진 이완규 법제처장을 지명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완규 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이자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23기 동기로 ‘절친’으로 알려졌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제기했던 ‘정직 2개월 징계 취소 소송’ 변호를 맡았다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 자문위원을 지냈다. 대선이 진행중일 때 이 처장은 윤 전 대통령 가족 관련 법적 문제와 관련해 긴밀한 조언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 장모이자 김건희 전 코바나 대표의 모친인 최은순 씨 관련 사건 대리인 목록에도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파면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가족의 ‘법률 대리인’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한덕수가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겠다는 그 검사, 이완규는 윤석열의 술친구로 알려져있고 뼛속까지 특수부 검사”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윤석열의 대학동기이자 검찰총장 직무정지 당시 변호인을 맡은 윤석열 최측근이다. 장모 최은순 변호도 맡으며 ‘제2의 윤석열’이라 불리는 사람이다. 국민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인물 선정이 아닌가 의심까지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나라를 어디까지 말아먹으려고 하느냐. 윤석열 파면으로 겨우 일상을 되찾아가는 국민께 이렇게 몹쓸짓을 하고 싶은가”라고 했다.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지명된 이완규 법제처장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며 이와 관련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여사님의 나라', 이제 끝나는가

지난 3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한 부부가 국가를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만들 수 있다는 비현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했다.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고 여당 의원들마저 절망케 했던 윤석열의 기행은 그에게 혼군(昏君)이라는 칭호를 안겼다. 듣도 보도 못했던 V1, V2 논란에 이어 ‘사실은 여사가 V0’라는 풍문으로 온 국민을 아연실색케 했던 김건희는 ‘윤·건희 공동정부’의 한 축으로 국정을 주물렀다. 사회 곳곳이 아수라장이 됐다. 임기 초 ‘바이든-날리면’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국론의 아수라장이 터지더니, 이태원 참사를 통해 국가 지도자들의 몰상식과 뻔뻔스러움을 보았고, 의료 대란으로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을 목도했다. 이 ‘총체적 아사리판’에 감사원, 국가인권위, 권익위, 방통위 등까지 뛰어들어 카오스급 혼돈을 지금도 경쟁하듯 창조하고 있다.
느닷없는 R&D 예산 삭감은 국가의 미래를 내다 버린 꼴이었고, 채 상병 사건에서 해병대 사령관이 자기만 살겠다고 자신의 명예와 책임마저 외면하는 파렴치를 목격했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보였던 총리와 부총리는 수시로 헌법을 위반하며 국정 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하나 더. 사실상 ‘무속 정권’이었던 이들 부부는 최고수급 무속인들을 여럿 썼음에도 결국 탄핵당했다. 무속이 이토록 허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교훈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IMF 때보다 더 나쁜 경기 침체다. 지금 서비스 생산, 소매 판매, 취업자 수, 청년 고용 등 거의 모든 경기 지표는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IMF 때는 기업의 줄도산이었다. 지금은 자영업 줄폐업이다. 대통령 하나 잘못 들인 덕에 서민이 개고생을 하는 나라가 됐다.

 

윤석열은 도대체 누구와 소통하고 국정을 논했을까 

 

그는 당선자 기자회견에서 “의회와 소통하겠다”고 했다. 참모들은 야당 대표 이재명을 만나라고 조언했다. “범죄 피의자 아니냐”며 거절했다. 2024년 총선에 참패하자 마지못해 2년 만에 만났으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면 피의자가 아닌 사람은 만났을까? 2024년 6월 5일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에 취임했다. 윤석열로부터 축하전화 한 통이 없었다. 취임식 다음날 현충일 경축식에서 조우했지만 축하인사도 없이, 모르는 사람 악수하듯 지나갔다. 이후 여야 원내대표 회동 때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이를 지적하니 다음날 윤석열이 전화했다. 엎드려 절 받았다. 이후 만난 적도,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그해 9월 윤석열은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된다. 최근 중앙일보 보도처럼 윤은 “당 대표도, 국회의원도 아랫사람이라 여기는 성향이 강했”는데 사실은 국회의장도 소통의 상대로 보지 않았다. 어쩌면 의회를 상대할 필요조차 없는 대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와 소통하며 국정을 논했을까. 조선일보 출신으로 윤의 대선 캠프 첫 대변인을 맡았다가 열흘 만에 탈출했던 이동훈 현 개혁신당 수석대변인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불법 계엄 선포 배경으로 “김 여사의 안위가 우선”이었을 것이라면서 “김 여사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감정은 ‘사랑’ 이상”이라고 표현했다. 또 이들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공개적으로 면박”주는데 윤은 “그냥 강아지 안고 웃기만” 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 ‘김건희 리스크’를 감지했을 뿐 아니라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부부의 역할 분담, 그러나 국정의 중심은 김건희

 

‘사랑 이상’이란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2022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때 이 부부의 모습을 많은 이들이 목격했다. 외국 정상들은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윤석열만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소폭’에 익숙한 그는 샴페인 홀짝이며 모르는 사람과 웃으며 인사를 나눠야 하는 그런 자리가 너무 불편했을 것이다. 이때 김건희가 “나가, 나가” 하며 손가락질과 함께 어깨를 연이어 밀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때 윤의 얼굴은 겁먹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2023년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사건 자료를 경찰에 이첩하자 거제에서 휴가 중이던 윤석열은 자신의 개인전화로 우즈베키스탄에 출장 중인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건다. 오후 12시 7분, 43분, 57분, 세 차례나 잇따라 전화했고 1시 25분엔 임기훈 국방비서관과, 4시 21분엔 신범철 차관과 직접 통화를 한다. 이건 도저히 대통령의 모습이라 볼 수 없다. 상사로부터 엄한 지시를 받은 실무 담당자의 모습이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 보면 남편 윤석열은 대통령실의 일상업무와 대외활동을 담당하고, 국정 기획과 점검은 아내 김건희가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된 듯하다. 당연히 ‘김건희 라인’이 더 세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대통령실 직원들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 월요일 출근해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아 주말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대한민국 국정의 중심은 아내 김건희였다. 이동훈은 윤은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김건희가 윤석열보다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고 했다. 그 뛰어난 결과가 남편의 탄핵이다. 광인임이 드러난 윤석열의 수준보다 낫다는 것이지 김건희가 무슨 능력과 자격으로 국가의 정치와 사무에 함부로 끼어드는가. 이를 용납한 윤석열은 물론, 이를 알면서도 못 본 척 직언을 외면한 집권 여당과 각료들 모두 함께 탄핵되어야 마땅하다.

 

혼란의 아수라장에서 건져야 할 교훈

 

나라를 어지럽게 했던 한 부부가 이제 대통령 관저를 떠난다. 이들은 수사받기 위해 다시 국민 앞에 설 것이다. 온당한 법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인데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해야 한다. 이들에게 절대 사면과 복권이라는 비헌법적 재량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 할아버지 이병철이 감옥에 갔더라면, 아버지 이건희가 감옥에 갔더라면, 이재용은 감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두 사람에 대한 역사의 단죄가 ‘완결’되어야만, 나라를 어지럽히고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격 미달 정치인 부부가 다시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고난은 우리의 몫이겠으나 이들에 대한 엄한 처벌과 그 완수는 이 혼란의 아수라장에서 우리가 꼭 새겨야 할 교훈이다. 정권 교체는 민주당의 명백한 사명이다.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 선고를 했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지난해 9월 13일 2024 파리 패럴림픽 선수단 격려 오찬에서 국기에 경례하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