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정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간 불협화음이 노출되는 데 대해 “지금 한미 동맹은 전혀 이상이 없다”며 “미국 /동맹 중 안보·통상 관계로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2일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 한미 동맹은 전혀 이상이 없다”며 정치권과 언론에서 자신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의 경질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색깔론”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년 1개월 사이 4번이나 만났다” “(한미 동맹에) 무슨 이상이 있느냐”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3월 정 장관이 국회 외통위에서 북한의 세 번째 우라늄 농축 시설 소재지로 평북 구성을 거론한 후, 미국 정부는 ‘한미 연합 기밀이 유출됐다’며 현재까지 6개월 넘게 우리 정부에 대한 정보 공유를 제한하고 있다. 국정원이 주미 대사관에 파견하려던 직원들의 비자 발급이 지연되는 등 한미 관계의 ‘이상 신호’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지금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는 나라 중 안보·통상 관계로 미국과 줄다리기를 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질시켜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2026년의 색깔론과 편향된 동맹관”이라고 했다.
정 장관은 또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서도 ‘구성’을 언급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며 “이번에는 미국이 틀린 것이다. 인사청문회 발언을 놓쳤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의원으로서 왜 이런 발언을 했지’ 물어봤으면 그것은 ‘정부의 문제’가 안 되지 않나”라는 주장이다. 미국은 올해 3월 우리 언론이 ‘현직 정부 고위 당국자가 구성 시설을 처음 거론했다’며 정 장관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기밀 유출로 보고 우리 정부에 재발 방지책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 소식통은 “현직 장관이 미공개 시설 존재를 인정해 문제가 됐는데도 ‘공개 정보’라고 주장하자 미국 측이 ‘재발 우려가 있다’며 정보 공유를 제한한 것”이라며 “계속 미국만 탓한다면 관계 복원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12일 기자 간담회는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일정이었다. 이날 오전 10시쯤 통일부 기자실을 찾은 정 장관은 약 45분에 걸쳐 최근의 여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언론과 미국이 자신의 진의와 맥락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며 “파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인다. 안경을 벗고 맨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 간 불협화음을 개선하려면 정 장관 등을 교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여권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11일 MBN 방송에서 “지금 현재로는 이대로는 안 된다. 미국이 이대로 물러서지 않는다”면서 “과감하게 이번에 외교안보 라인을 필두로 쇄신하는 것이 이재명 대통령이 성공하고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DMZ 지뢰 폭발은 “사고” 주장
이날 간담회에서 정 장관은 지난달 21일 북한군이 우리 측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우리 군 3명이 다친 일을 “사고”로 표현하며 “불행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외통위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도 북한이 고의성을 갖고 지뢰를 매설했는지 알 수 없으니 “아직은 (북한의) 지뢰 공격으로 특정할 수 없다”고 했었다. 정 장관의 국정감사 발언 이후 북한은 “한국의 관리 정동영도 이번 ‘지뢰 폭발 사건’을 우리 공화국의 고의적 공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스스로 고백했다”면서 이를 사과와 재발 방지 요구를 거부하는 핑계로 삼고 있다. 하지만 정 장관은 해당 발언에 대해 “충돌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한 얘기”라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2015년 목함지뢰 사건은 군사분계선(MDL) 남쪽 430m까지 침투해 우리 장병들의 이동로에 의도적으로 설치한 ‘지뢰 공격’이 명백했기에 유감 표명을 받아낸 것”이라며 “반면 이번 사건은 MDL 10m 안팎의 설정 문제와 남·북·유엔사 간 관할선 불일치라는 구조적 문제가 개입되어 있어 현재 의도를 검증 중인 단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유엔사와 우리, 북한의 군사분계선(MDL)이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서로가 생각하는 MDL이 달라서 북한군이 MDL 이남에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자신의 발언을 북한이 대남(對南) 공격용으로 역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 장관은 “이것을 대북 저자세라고 뭐라 그러는데 저자세가 아니라 ‘정자세’”라며 “정동영은 20년 전 장관할 때도 지금도 대북 ‘정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지뢰 폭발 후 북한이 여섯 차례에 걸쳐 관련 입장을 낸 데 대해서도 “그만큼 예민하게 남북관계를 주시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의원 시절에도 ‘구성’ 발언했다”
정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지금 영변과 구성, 강선에 있는 농축 시설은, 미국이 폭격한 이란의 농축 우라늄이 60%인 데 비해 90% 무기급 우라늄(을 만든다)”고 했었다. 한미 정부가 인정한 적 없는 구성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를 분명히 언급한 것으로 미국은 이를 ‘기밀 유출’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날 정 장관은 “지난해 7월 14일 인사청문회 때도 구성 얘기를 했다. 그것이 원조”라고 했다. 정 장관이 청문회 질의에 답변하며 “현재 우라늄 시설도 돌아가고 있다. 영변에 한 군데 더 짓고 있다. 구성, 강선에도 있다. 네 군데 우라늄 시설에서 많게는 2000㎏, 적게는 1300㎏의 고농축 우라늄을 이미 추출해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나?”라고 말한 사실은 국회 회의록을 통해 확인된다.다만 올 3월 발언과 비교하면 구성에 기존에도 알려진 ‘우라늄 가공 시설’이 있다는 것인지, ‘90% 무기급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는 것인지가 덜 명확해 당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장관 후보자나 의원 신분에서 한미 연합 기밀을 받아본 것이냐는 추가 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정 장관은 이날 “미국 측에 내가 작년 7월 의원일 때 한 얘기인데 왜 장관일 때 책임을 묻느냐고 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언론을 향해 “7월 발언은 삭제해버리고 3월 발언만 갖고 쓰는 건 왜곡”이라고 했다.정 장관은 이날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100% 수용할 수 없다. 우리의 국익은 무엇이고, 자율성은 무엇인지 물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미국 비자 발급이 보류된 데 대해서도 “미국이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미국 방문에 대해 (비자 발급 여부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